종교개혁사 나눔(4)
종교개혁사 나눔(4)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왕과 여왕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었다. 잉글랜드 왕 헨리8세는 첫째 부인이었던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 로마 교회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렇게 까지 캐서린이 맘에 들지 않았을까? 아들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30년 동안 왕권 계승 문제로 싸운 장미 전쟁의 아픔이 그의 마음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러면 세 번째 결혼에서 아들을 얻었으면서도 왜 결혼을 세 번이나 했을까? 그저 새로운 부인을 원했기 때문일까? 무엇이 헨리8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을까?
어쨌든 왕 또는 여왕의 정책에 따라 종교개혁은 가속도가 붙기도 했고, 정체되기도 했다. 정치가, 어쩌면 한 사람의 마음이, 종교개혁의 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헨리8세는 과감히 로마 교황과 결별했고, 그 아들 에드워즈6세는 그 연장선에 있었지만 그의 왕위는 오래가지 않았다. 딸이라서 버림받았던 첫째 부인 캐서린이 낳은 메리 튜더가 여왕이 되었을 땐 피바람과 함께 로마 카톨릭으로 회귀하였다. 종교개혁은 표면적으로는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피의 메리도 오래 정권을 잡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엘리자베스1세가 여왕이 된다. 둘째 부인 앤 불린의 딸이었는데 어쩌면 가장 헨리8세와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엘리자베스1세는 왕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써 적당한 수준의 종교개혁을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누가 왕/여왕이 되었는가에 따라 개혁의 속도와 정도에 변화가 생겼다. 정치와 경제와 같은 현실이 우리 믿음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신자와 교회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도를 드려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딤전2:2)
#함께읽는종교개혁사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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