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장 / 그리스도의 사랑에 잠겨 사는 삶 (03/06)
성경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화목하게 하는 직분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해설
1-10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11-21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육체(장막 집)가 무너지면 신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집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1절). 그러므로 이 소망을 가진 자는 믿음으로 삽니다(2-7절). 그렇기에 믿음으로 사는 자는 살든지 죽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기에 힘씁니다(8-10절). 또한 주를 경외함으로 삽니다(11절).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삽니다(12-17절). 그러한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자로서의 삶입니다(18-21절).
신자의 모든 동기는 우리에게 베푸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시고, 세상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이 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맡아, 복음으로 죄인들을 초청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
주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죄인을 의로운 자로 불러주시니 고맙습니다. 그 사랑에 깊이 잠겨 살게 하옵소서.
고린도후서 5장 ‘탄식하는 심령’
오늘 말씀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부터 어려웠습니다. 여러 번 반복하며 차근히 읽어봅니다. 기도도 해보며, 관련 주석도 찾아봅니다. 그리고 묵상해봅니다.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부분은 바울의 ‘탄식하는 심령’입니다. 무려 두 번이나 고백합니다. ‘참으로’라는 부사를 써 매우 그러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탄식은 인간 존재의 한계성과 무기력으로부터의 영원한 해방과 자유를 갈구하는 긍정적인 고뇌의 표출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이 땅의 삶이 고단하여 어서 천국에 가서 쉬고 싶다는 탄식이 아니라, 몸을 떠나 실제로 주와 함께 거하고 싶은 간절한 염원의 소리인 것입니다.(8)
바울의 심령을 보며, 하늘의 소망을 갈망하여 탄식해본 적이 있나 제게 물어보게 됩니다. 저는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실제로 주님과 함께 지내기 위해 영적인 몸을 미치도록 간절히 사모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온전하게 함께 있고 싶다는 갈증이 약하다는 것이겠지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너무나 기뻐, 아예 이 육체를 벗어버리고 어서 저 천국 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아마 전 교제의 참된 기쁨을 충분히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덜 사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기쁨에 취하지 않으니, 이 땅에서 주님과 교제할 수 있는 방편인 기도와 말씀도 소홀하게 합니다. 갓난아기인 것입니다.
주님,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과 주님과의 교제를 위해 탄식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주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는 제 어린 모습부터 탄식해야겠지요. 그리고 주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염원하는 탄식으로 변모되어가야겠지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저를 강권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