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8장 / 바울의 답변2-1: 우상 제물에 대해 (02/21)

우상에게 바친 제물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1-13 우상에게 바친 제물

바울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대한 질문에 답합니다. 우상은 허상이며 참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입니다(4-6절). 그러나 이 지식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로 인해 흔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7절). 음식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를 생각해야 합니다(8-12절). 그렇기 때문에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아예 고기를 영원히 먹지 않는 게 낫겠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지식을 가지고 나만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3절).

내가 가진 지식으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약한 형제 앞에서 오히려 그들의 연약함을 비웃으면서 자기 기준에 끌어맞추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다리시며 양육하는 사람들을 실족하게 한다면 그 일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라는 말씀을 곱씹어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자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나타내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앞섭니다.

하나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게 하옵소서. 지식은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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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묵상
  1. 질그릇
    질그릇 says:

    고린도전서 8장

    오늘 말씀을 보니,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신자들에 대한 바울의 권면을 봅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약한 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먹지 않기를 권합니다. 현재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로 인해 문제 생길 일은 없습니다. 다만, 이 말씀을 통해 연약한 성도를 어떻게 대할지 원리를 보게 됩니다.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성도라면, 다른 성도가 실족하는 일을 당연히 원하지 않을 겁니다. 복음을 전하여 할 자가 오히려 약한 자를 멸망시키다니요. 어떤 그리스도인도 이를 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우상의 제물을 주님에게서 난 단순한 음식으로 보고(6, 지식) 먹었던 성도들은 자신의 모습을 통해 믿음이 약한 자들이 넘어질 것까지 고려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지식의 교만으로 당당하게 우상의 제물을 먹었던 것이 1차적인 원인이겠지만요..ㅎ) 이 지식이 모든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닌 데 말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이 지식이 없어서, 정말 우상의 제물로 알고, 그것을 먹어도 되는 줄 오해할 수 있는 데 말입니다.(7)

    주님은 자신을 믿는 작은 자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아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하실 정도로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마18:6) 그만큼 믿음이 작은 자에게 신중을 매우 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 연약한 자들에 대해 사랑을 갖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에 대해 관심 있게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나의 언행이 주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연약한 성도를 실족시킬 수 있다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 성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알지 못해 배려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요즘 같이 다양하고, 변화가 빠른 시대인 만큼, 교회에는 다양한 성도들과 세대 차이가 나는 성도들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나만의 언행 틀을 내려놓고, 사랑으로 다른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대화하고 행동해야하지 않을까요. 이런 교제 안에서 실족이 아니라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함께 나아가야겠지요. 그런 공동체가 되어가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원해봅니다. 아멘.

  2. 강진
    강진 says:

    1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6 우리에게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참된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경을 알아야 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바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 앞에서 사람의 죄됨이 얼마나 비참한지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 지식은 결코 교만한 지식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참되고 귀중한 지식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상의 제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이 지식이 사람을, 나를 교만하게 할까 생각해 봅니다. 내가 이 지식을 아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이 지식을 알게 되었는데 도리어 이 지식이 나를 교만하게 하는 것을 봅니다. 이 지식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내가 이 지식으로 하나님을 드러내거나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나를 드러내고 나를 높이는 것을 봅니다. 이 지식으로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이 지식이 은혜가 아니라 교만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십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나도 그를 위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이는 지식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나의 죄사함을 위하여 십자가에 자기 아들을 못박았습니다. 이 사랑이 나를 다시 살렸고 나를 다시 세웠습니다. 내가 이 사랑 안에 있을 때만 온전합니다. 지식은 이 사랑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으로 끝나면 교만으로 끝나지만, 지식이 사랑으로 향해 가면(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향해 가면)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주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나에게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지식으로 나의 교만을 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식이 많음이 도리어 내게 화가 되는 것을 봅니다. 주님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가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사랑이 부족하지 않는 자 되기 원합니다. 이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직장에서, 관계에서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사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